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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5 히쇼의 새 잡상 혹은 감상

도서관에 엘릭시르판 십이국기 5권이 들어와 있었다. 뭐?! 히쇼의 새라니! 내가 본 적이 없는 제목이잖아! 작가 다시 연재 시작했어? 하는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정말로 재작년에 잡지에 연재된 신간이었다. 신나서 읽었는데....!

 이미 작가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그런 모험담은 이미 앞에서 다 풀어놓은 것인지 주인공에 해당하는 이들은 제껴두고 엑스트라나 다름없는, 십이국에 살고 있는 민초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버렸다. 십이국기는 분명히 판타지에 속하는 소설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현실적이기 그지없다. 망국의 백성들이 겪는 일들이 이 책의 네 장에 걸쳐 이어진다.

 책의 제목이 되어 버린 히쇼의 새라는 첫 장과 마지막 장의 이야기가 그나마 희망적이다. 첫 장은 도삭이라는 도자기 새를 만들고 경사스러운 제의를 주관하는 나씨가 주인공인데, 현실에 마음이 꺾여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장을 마무리지었다. 마지막 장의 풍신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선왕의 횡포에 모든 걸 잃었지만, 왕이 즉위할 것이라는 전조를 얻는다. 두 장은 요코가 왕이 될 무렵의 경국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사실 망국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처음과 끝은 새로 다시 일어나는 나라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 장 낙조의 옥은 아직 망하진 않았지망 망해가는 나라, 류국의 이야기인데 이건 이전의 권에서도 살짝 다뤘었다. 류국은 서서히 기울어간다. 왕이 눈에 띄는 전횡을 하는 것도 아니고 비인도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서서히 무너져 간다. 그리고 나라가 기울면서 발호하는 잔인한 범죄들에 사법은 근간이 흔들린다. 우리로 치자면 대법원장이라 할 수 있는 에이코의 고뇌는 사형을 폐지해야 하는가 유지해야 하는가-하는 현재의 우리들의 논의와 다르지 않다. 에이코는 사형이 이미 폐지되었다고 할 수 있는 나라에서 다시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지 고뇌한다. 그가 결정을 내리기까지 누군가는 금수나 다름없는 범죄자의 갱생 불가능함과 피해자들의 한을 두고 사형을 주장하고, 누군가는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따위 미진도 없는 형의 무용함을 두고 사형 불가를 주장한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두고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설전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세번째 청조란. 이 이야기에서야 말로 오노 후유미의 잔인한 면을 엿볼 수 있는데, 그건 등장인물에 대한 잔인함보다도 독자에 대한 잔인함이다(그렇다고 등장인물한테 너그럽단 소리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게 내가 가장 마지막을 고대하면서 읽었던 장이니 만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내용은 아예 언급도 않고 넘어가야겠다. 어떤 사람은 이 장에 대한 평으로 '작가 즈겨브린드아'라고 써놨다.

 네 장 모두 공통된 이야기가 있다. 망조와 신조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마라!'라는 작가의 이야기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자신과는 상관 없을 거란 그런 안이한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 나한텐 이 권 전체가 그런 작가의 호소처럼 들렸다.

 첫 장에서 히쇼의 동료였던 쇼란은 하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서 눈을 돌리고 미친 왕의 미친 명령 따위 무시해 버린다. 그러다가 화를 당한다. 그냥 쫓겨난 게 아닐까 했지만 풍신을 읽어 보면 절대로 그렇게 가볍게 끝나지 않았을 거란 암시? 암시보단 더 무거운 증거들이 나온다. 두번째 장에선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왕이 나온다. 류국은 누구보다도 법제질서를 공고히 확립했던 그 왕이 모든 것에, 그러니까 사람의 삶 자체에 흥미를 잃어서 망해간다. 세번째는 지금 코앞에 닥친 무엇보다도 중차대한 사태를 깨달은 누군가는 경고의 목소리를 발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혀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그 무관심함이 사태의 해결에 수많은 걸림돌을 놓는다. 네번째 장은 자신들의 일, 어찌 보면 국가적으로 매우 중대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취미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에 침잠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노 후유미라는 작가의 정치관따윈 모른다. 하지만 이 작가는 분명히 자기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지말라!'고 노호하고 있는 것 같다.

덧글

  • JOSH 2015/10/04 00:29 #

    > 어떤 사람은 이 장에 대한 평으로 '작가 즈겨브린드아'라고 써놨다.

    오노황상은 도S 시니까요... =,.=
  • 스징 2015/10/04 16:30 #

    그렇죠 도S이십니다. 분명히 좌절하고 비뚤어질 만한 상황에 인물을 던져 버리고 구원은 꽁꽁 숨겨놓는 등장인물 다루는 법에서도 살짝 느낀 바가 있었지만 독자를 다루는 방식은 더 가혹하신 도S작가님ㅠㅠ이시죠.
  • FREEBird 2015/10/04 16:40 #

    하지만 가장 가혹한 S짓거리는 바로 후속편 안써주시는 거라는...
  • 스징 2015/10/04 16:52 #

    그렇죠....그러니까 독자한테 가장 잔인한 도S 작가님 타이키가 어떻게 됐냐고!!! 왕은 어디 가서 뭘하고 있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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